얼마 만에 읽는 한국어 책인가! 그동안 책에 목말랐다.
간만에 한국어 책이 잔뜩 생겨서 읽어 재꼈다.
아홉살 인생 (6/16)
위기철 지음 / 청년사
나의 점수 : ★★
나는 느낌표 선정도서류의 책이 정말 싫다. 내가 지나치게 비뚤어진 건가. 인생은 아름다워. 난 착해. 이렇게 떠들어대는 책이 구역질 나게 싫다. 비현실적으로 착한 주인공의 가족, '여자는 보호해야 마땅해, 왜냐면 나는 신사니까' 하는 식의 태도, 모두 짜증이 났다. 아홉 살의 관점에서 썼다고 하기엔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 전혀 아이답지 못한 말투로 아이 인척 서술하는 부분은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뒷부분은 아예 성인이 된 작가가 회상하는 형식에 가까웠기 때문에 작가의 목소리가 가득해도 참을 만했다. 이 책에서 작가의 시선은 지나치게 왜곡됐다. 말도 안 되게 싸가지 없는 여자애가 등장하고 주인공은 '난 남자이고 여자를 보호해야 하는 존재니까 다 이해해, 여자는 원래 이런 거야'라는 태도로 행동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똑같은 얘기를 써도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작가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조금 더 읽을만한 책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이 책이 쓰레기 같은 책이라는 건 아니다. 역량이 부족한 작가가 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일 뿐.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보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읽을 수도 있는 책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 (6/17)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나의 점수 : ★★★
지나치게 교훈적인 '아홉 살 인생'을 읽고 나서 날카로워진 내 신경을 잠재워 준 책이다. 재미있고 가볍게 읽기 좋은 쿨한 책. 이 작가는 글을 참 잘 쓴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의 목소리가 아니라 주인공의 목소리로 얘기할 줄 안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묘사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뻔하고 뻔한 연애 얘기지만 뻔하지 않게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 다 좋았는데, 평범한 현실을 다루다가 막판에 비현실로 빠지는 부분이 조금 마음에 안 들었다. 이게 바로 내 얘기야 하며 공감하며 읽게 하다가 갑자기 딴 세상 얘기를 해버리니 김이 빠졌다. 그렇다고 해서 마지막 부분이 이 소설의 미덕을 가릴 만큼 큰 흠이 되진 않는다. 비현실적인 결말조차도 특유의 경쾌한 글솜씨 때문에 꽤 읽을 만하다. 특히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여자라면 많이 공감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
토파즈 (6/18)
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태동출판사
나의 점수 : ★★
무라카미 류가 이런 소설을 쓴다는 것을 왜 잊고 있었던 것일까. 알았더라면 아예 안 읽었을 것을. 일단 손에 잡았으니 끝까지 읽긴 했지만 참 읽기 괴롭고 힘든 책이었다. 정말 변태적이다. 야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조금도 야하지 않고 그저 변태적이다. 그리고 슬프다. 저 밑바닥 인생을 힘겹게, 인간으로서의 위엄을 조금도 누리지 못한 채 사는 주인공들을 보자니 견딜 수 없이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나저나 과연 이게 제대로 번역이 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뒤에 역자의 말을 보면, 무라카미 류가 성 산업에 종사하는 아가씨들의 말투를 흉내 내서 시작도, 끝도 없이 이어지며 문법도 엉망인 문체로 글을 썼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문체는 짧고 딱딱 끊어진다. 시작과 끝이 너무나 명백하다. 원본을 안 읽어서 뭐라 말할 순 없지만, 역자의 말에서 말한 문체대로 번역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