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대안

예수전(6/23)

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나의 점수 : ★★★★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이라는 성경이란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책인가 궁금해서 성경을 읽어보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매번 포기했다. 이 책이 마가 복음을 강독하는 형식으로 쓰였기 때문에 이 책에도 성경 구절이 많이 등장하다. 중간마다 나오는 성경 구절을 읽고 있으려니 내가 그동안 왜 성경 읽기를 포기했는지 알겠다. 대체 성경은 누가 번역한 것일까. 도저히 우리나라 말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해 불가능한 번역으로 가득 차 있다. 성경을 읽고 표면적인 뜻이라도 이해하는 것이 대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우리나라에 출판된 번역서 중 최악의 번역을 꼽으라면 자신 있게 성경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그는 성경을 읽고 자기 나름의 해석을 시도했다. 그의 강독을 보면 텍스트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컨텍스트, 특히 당시의 정치, 사회적 맥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그는 예수를 일종의 혁명가로 보았다. 그리고 그는 예수의 혁명 정신을 어떻게 현대에 적용할까를 고민한다. 이천 년 전에 있었던 고리타분한 역사를 얘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역사의 교훈을 지금 이 시대에 비추어보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닌가 싶다.

예수를 혁명가로 보는 그의 해석이 신자들에게는 불온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믿음을 보았다. 나는 이 책이 불온하기는커녕, 신앙 고백으로 느껴졌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김규항이 기독교 신자일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보니 김규항, 그는 정말 믿음이 깊은 사람이다. 그는 예수라는 인물을 정말 존경하며 "믿는 사람"의 마음으로 예수를 이해하려 한다. 그의 편에 서서 예수의 행동을 이해하려 한다. 그가 옳다는 신념, 이것이 믿음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책을 보기 전에는 제목부터가 신성 모독처럼 보이는 예수"전"을 읽고 토론을 하는 기독교 신자들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는데 이제 이해가 된다. 교회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자라면 이 책이 신앙서로 읽힐 수 있으리라.

나같이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책 전체에서 뿜어나오는 믿음의 아우라가 약간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큰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저자가 성경을 비판적으로 읽었듯이 우리가 이 책을 비판적으로 읽는다면 믿음의 고백이 무슨 문제가 될까. 우리는 그저 그의 개인적인 믿음을 존중하며 옆에 살짝 제쳐 두고 그가 "인간 예수"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현실사회 비판과 혁명 정신을 읽으면 되는 것이다. 그는 현 체제(자본주의)를 완전히 뒤엎기를 꿈꾼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근본적인 혁명이지 점진적인 개선이 아니다. 그는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오늘의 바리사이인에 비유하며 아래와 같이 비판한다.

“그들은 언제나 현실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스스로 그런 변화를 위한 노력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 노력은 대개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 현실의 외피를 덜 추악하게 만드는 일에 머문다. 그들은 오히려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를 좇는 모든 노력을 ‘비현실적’이라고 냉소한다. 그들은 ‘NGO’, ‘시민운동’, ‘개혁 운동’, 그리고 ‘실현 가능한 진보’, ‘최소한의 상식의 회복’ 따위 간판과 표어를 걸고 활동한다. 인민들은 탐욕스럽고 불의한 지배세력을 혐오하지만, 양식과 윤리로 무장한 그들을 신뢰하고 존경한다. 그래서 그들, 오늘의 바리사이인들은 사회적으로 강력한 영향력과 설득력을 가지며, ‘진정한 변화를 막기 위한 변화’라는 그들 본연의 임무를 지속하게 된다.”

그가 말하는 혁명- 나눔의 세상, 자발적 가난을 추구하는 세상, 자본주의를 넘어선 세상을 만드는 것- 에 나는 온전히 동의할 수는 없다. 김규항은 이상을 말하고 혁명을 이야기하지만 "어떻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꿈꾸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 역시 그러한 세상을 꿈꾸지만, 도무지 그게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모든 사람이 자발적 가난을 추구하고 서로 나누는 세상이라면 좋겠지.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갖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버릴 수 있게 할 수 있는 거지? 그의 이상에는 공감하지만, 방법론이 빠진 이상은 공허한 주장일 뿐이지 않은가. 부끄러운 일이지만 일단 나부터가 온전한 자발적 가난을 추구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결국 나는 현실과 타협한 채 그가 비판하는 "오늘의 바리사인"으로 남아 있다. 나는 혁명을 꿈꾸지만 그것은 단지 꿈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진정한 변화를 막기 위한 변화'를 추구할 뿐이다.

또 한 가지 저자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이적, 특히 부활에 대한 생각이다. 나는 이적을 일종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단군 신화에서 웅녀가 정말 곰에서 인간이 된 것이 아닌 것처럼 예수의 이야기도 "기적"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일종의 상징인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기적이 진실이냐 아니냐는 논쟁 자체가 부질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기적이 문자 그대로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믿고 여러 가지 "과학적"인 근거를 들면서 기적을 입증하려고 하고 있는데 어떻게 기적의 사실 여부에 대한 논쟁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거지? 왜 이적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고 상징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왜 논쟁을 회피하려고 하는 걸까. 적어도 나는 이적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라고는 얘기할 수는 있는 것 아닌가. 굳이 논쟁 자체가 부질없다는 태도를 취했어야만 할까?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예수와 주변 인물에 대한 역사적 해석 중에 어디까지가 저자의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다른 학자들의 연구 결과인지 구분이 명백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인용과 자기 주장의 구분이 지나치게 불분명하다. 인용 표시를 분명히 하고 참고 문헌을 달아두었다면 더 좋을 뻔했다.

아무튼, 오래 기다려서 읽은 보람이 있는 좋은 책이었다.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추천.

by 날쌘도도새 | 2009/07/30 16:21 | 책읽는 나 | 트랙백 | 덧글(2)

아! 대한민국, 저들의 공화국(2/17)

아! 대한민국, 저들의 공화국
지승호 인터뷰 / 시대의창
나의 점수 : ★★★★

지승호라는 인터뷰어를 알게 된 것은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장하준 씨의 책을 찾아 읽다보니 지승호 씨를 알게 되고 지승호 씨의 책을 찾아 읽다 보니 우석훈 씨를 알게 되었다. 우석훈 씨 책에는 장하준 씨가 또 등장한다. 이렇게 책을 읽다가 서로 연결되는 고리를 발견하는 건 참 재미있다. 이게 책읽기의 또 다른 즐거움이겠지? 하여튼 도서관에서 지승호 씨의 인터뷰 책을 찾다 보니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은 비판적 운동가라고 부를 수 있는 여섯 사람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참 답답해진다. 한반도 대운하에서부터 재벌문제까지,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우리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 정말 착잡하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비판은 쉽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한발자국만 뒤로 물러나서 관찰하면 잘못된 것이 다 보이니까. 하지만, 잘못된 것을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렵다. 사회란 것이 워낙에 많은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문제에는 수많은 사람의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를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섯 명의 사람들은 그럼에도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글이라는 무기로 비판을 하기도 하고, 내부 고발을 하기도 하고, 또 혹자는 자연으로 돌아가서 자신부터 변화하고자 하고, 또 노래를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사람도 있다. 내가 이 사람들의 주장과 비판에 모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은 정말 대단해 보인다. 이렇게 영감을 주고, 피를 끓게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 나는 참 좋다.

by 날쌘도도새 | 2009/02/20 16:22 | 책읽는 나 | 트랙백 | 덧글(0)

직선들의 대한민국(1/3)

직선들의 대한민국
우석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나의 점수 : ★★★★

우석훈 씨는 정말 다작을 하는 작가이다. 이 책의 출판이 2008년 6월인데 88만 원 세대를 2007년 8월,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는 2007년 8월,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2008년 6월, 게다가 괴물의 탄생은 2008년 9월에 냈으니 1년이 조금 넘는 기간에 무려 책을 5권이나 썼다는 건데.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각각의 저서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을 비판하고 새로운 문제제기를 한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다. 이 책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좋은 책이긴 한데 조금은 덜 여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급하게 쓴 책이 아닌가 싶었다. 문제제기도 좋고 아이디어도 좋지만, 논리적인 전개 및 뒷받침이 조금은 부족한 듯 보였다. 근거를 확실히 제시하지 않고 '내 생각엔 대강 ~ 할 것 같다.' 라는 식의 주장이 좀 많다. 대중을 겨냥하고 쓴 책이라지만 학문적 엄밀성이 더해졌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너무 길어서 접음
이 책은 그의 전작에서와 비슷하게 한국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샌드위치 위기론이 조직론 문제를 다루고 촌놈들의 제국주의가 '평화'를 다루었다면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건설'을 다루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부터 줄기차게 추진하는 대운하를 필두로 한 건설 뉴딜 정책에 대한 비판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건설'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비판서는 많았지만, 이 책이 다른 책과 차별화되는 점은 여기에 '미학'의 개념을 도입했다는 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말한 바로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온 국민이 건설 및 부동산에 목숨 거는 것은 일종의 미학이다. 그가 '건설미학'이라 이름 붙인 그것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높디높은 새 건물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이다. 오늘 신문에서 강남에 제2롯데월드 신축을 허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기사를 봤다. '랜드마크'를 위해서라면 고도제한도 풀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높은 건물에 열광하고 신축 건물에 열광하며 랜드마크에 열광한다. 한강변에 우뚝 솟을 555m의 건물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그게 바로 건설 미학이다. 그리고 그 건설 미학이 우리나라의 부동산 바람, 그리고 건설 바람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새로운 미학의 제시다. 저자가 '생태 미학'이라 부르는 새로운 미학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몫은 예술의 몫이다. 작은 것, 오래된 것, 구불구불한 것, 그리고 느린 것의 아름다움을 아는 것,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생태 미학이다. 밀고 새로 짓는 건물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을 정비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그게 생태 미학이다. 사람들의 가치관이 건설 미학에서 생태 미학으로 바뀌는 날이 오면 우리나라의 풍경도 훨씬 아름다워질까? 높게 들어선 아파트로 가득한 공간이 아니라 오래되고 낮은 건물들도 공존하는 곳으로 바뀔까? 정말이지 나도 저자가 얘기했듯 '경제의 시대'가 아닌 '아름다움의 시대'에 살고 싶다.

대운하에 대한 얘기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청계천은 환경과는 전혀 거리가 먼 정책이고, 대운하는 한마디로 정신 나간, 절대 해서는 안 될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4대 강 정비사업이니 뭐니 해서 계속 밀어붙일 추세이긴 하지만. 내가 궁금했던 건 조금만 생각해봐도 전혀 아닌, 이 정책을 왜 그렇게 쌍수를 들고 나서서 하려고 할까였다. 그래. 대통령으로서야 건설 붐을 일으켜서 일시적으로 경기 부양해보겠다는 근시안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치고. 그럼 다른 정부 관계자나 국회의원들은 바보라서 그걸 가만 보는 건가 했는데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렇다고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논리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 것 같다는 뜻이다.) 대운하 찬성론자의 논리를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될 줄이야. 저자를 따르면 대운하를 계속해서 검토하게 하는 힘은 두 가지다.

1. 전국적인 상수원 정책 및 확보의 문제 - 낙동강의 수질 관리 및 수량 부족의 문제다. 한마디로 한강 유역의 (상대적으로) 깨끗한 물을 낙동강 유역으로 주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해결책으로 운하를 생각해 낸 사람은 진짜 바보다. 운하를 하면 한강 유역의 물도 더러워질 것이 뻔한데. 청계천의 물이 맑고 깨끗하며 청계천 복원이 모범적인 환경정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다시 말해 '건설 미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주장에 흔들릴 것 같기도 하다.

 2. 치수 및 수질 관리의 문제 - 4대 강 정비사업에서도 줄기차게 주장하는 건데 홍수나 가뭄에 대한 치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홍수를 방지하려고 제방을 쌓고 토사가 누적되고 수위가 높아지고, 다시 제방을 더 높게 쌓고 이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게 현재 우리나라의 치수 정책이란다. 강바닥이 너무 높아졌으니까 이제 좀 긁어 내고 다시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그 김에 강들도 다 이어서 운하 만들면 되겠네 하는 것이 대운하 찬성론자의 주장이다. 역시 '건설 미학'의 눈으로 보면 수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방식은 전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 매년 강바닥을 긁어내고 다시 제방을 쌓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건데 그 비용을 강바닥에서 긁어낸 토사를 판 돈으로 메꾼다고 쳐도 더 큰 문제는 생태계다. 매년 생태계를 교란하겠다고? 결국, 한강부터 낙동강까지를 거대한 청계천으로 만들겠다는 것에 다름없다. 치수 문제는 다른 선진국에서 많이 도입하고 있듯이 자연형 하천으로 가고 상습적으로 수해를 입는 부분을 공용지로 만드는 해법이 제일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먼 미래를 보아도 타당하고.

어쨌거나 재미있게 잘 본 책이었다. 재생지로 만들어져 책이 매우 가볍다는 점도 이 책을 읽는 것을 즐겁게 만들었던 또 하나의 이유였다. 한 번쯤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by 날쌘도도새 | 2009/01/08 13:20 | 책읽는 나 | 트랙백 | 덧글(0)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12/24)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장하준.아일린 그레이블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 / 부키
나의 점수 : ★★★★

이 책의 영어 부제 'an alternative economic policy manual'이 잘 말해주듯 이 책은 대안경제정책 매뉴얼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는 '신자유주의가 유일한 길은 아니고 분명 대안은 존재한다'이다. 그리고 그 대안은 하나가 아니다. 1부에서는 경제 발전에 대한 신화와 현실이라는 주제로 그릇된 신화를 기각한다. 사실 이 신화들은 저자의 전 저작들에서 끊임없이 다루고 있던 주제들이고 이 책에서도 풍부한 통계적 자료를 바탕으로 신화를 기각한다. 책에서 기각하고 있는 신화는 6가지이다.
1. 오늘날 부유한 국가들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자유 시장 원리를 지속적으로 실천했기 때문이다. -> 장하준이 그의 저서에서 지속적으로 다뤄왔듯이 오늘날 부유한 국가들은 모두 보호 무역 정책을 택한 경험이 있다.
2.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한 개발도상국들은 경제적 번영을 누려 왔다. -> 그렇지 않다. 개도국들은 적절한 보호 무역 정책을 택했을 때 오히려 높은 성장률을 보였으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한 이후로 번영을 누렸다는 증거는 없다.
3.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중단될 수도 없고 중단되어서도 안된다. -> 세계화는 기술적 진보의 불가피한 산물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촉진시키는 것은 바로 정치적인 상황이다. 또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사이의 관계는 단절될 수 있으며 오늘날 산업 국가들 사이에서도 세계화의 진전에는 상당한 정도의 정책적, 제도적 다양성이 존재한다.
4.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모델은 모든 개발도상국이 모방해야 할 이상적인 형태다. -> 영미형 국가들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거둔 성과는 개입주의 시대에 비해 뛰어나지 않으며 미국 모델을 이식한 개도국이 좋은 성과를 거둔 것도 아니다.
5. 영미형 모델이 보편적 시스템인 반면 동아시아 모델은 특수한 시스템이다. -> 경험적 사례로 볼 때 동아시아 모델이 영미형 모델에 비해 경제 발전에 유리하며 영미형 모델도 그 나름의 특수한 조건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6. 개발도상국은 국제기구와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국내 정책 기관이 요구하는 규율을 준수해야 한다. -> 공무원이 본래부터 부패한 존재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정책 결정 권한을 비선출직인 전문 관료의 손에 맡기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

2부에서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정책 대안을 무역과 산업, 민영화와 지적재산권, 국제 민간 자본 흐름, 국내 금융 규제, 그리고 거시 경제 경책과 제도들이라는 부분에 대해 제시한다. 정책 대안에서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장에 맡긴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국가에서 그 국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전략을 세운 후 그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정책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보호 무역을 취할 필요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외국인의 직접 투자를 제한할 필요도 있다. 이 모든 국가의 개입이 WTO에서 반대하는 방식대로 직접적인 개입일 필요는 없다. 미국의 사례처럼 교육에 투자한다던가 해서 간접적인 지원을 할 수도 있고 협상력을 발휘하여 지적재산권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예외를 끌어낼 수도 있다. 한마디로 조금 더 영리해진 동아시아 모델이라고 해야하나.

저자의 기본 주장엔 모두 동의하며 다만 이 대안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한 가지 큰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것은 유능한 경제 관료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고 좋은 전략을 세우고 그것을 영리하게 실천할 수 있는 투명한 관료가 없다면 위의 매뉴얼은 모두 소용이 없어진다. 스스로 살려고 하는 의지를 가진 나라에 능력있는 관료가 있다면 발전의 여지는 충분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개도국에 그런 관료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진정 개도국이 발전을 이룩하길 원한다면 선진국에서 지원해야 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능력을 가진 유능한 관료를 키우는 일일 것이다.

by 날쌘도도새 | 2009/01/04 18:11 | 책읽는 나 | 트랙백 | 덧글(0)

촌놈들의 제국주의(11/28)

촌놈들의 제국주의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나의 점수 : ★★★★

참 오랜만에 봤던 책이고 다섯번째로 본 우석훈씨의 책이었다. 88만원 세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에 이은 한국경제대안 시리즈의 3권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정말 신선한 내용으로 가득찬 책이었다. 저자는 한국의 자본주의는 이제 외부의 식민지를 필요로 하는 제국주의 단계에 달했지만 우리나라는 제국주의를 경험해 본 적도 없으며 하려고 해도 능력이 안되는, 말하자면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상태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제국주의를 원함에 따라 군비지출은 늘어나고 있으며 나라를 둘러싼 지정학적 상황도 전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큰 주제이다.

그동안 평화를 주장하는 책은 많이 읽었지만 평화를 경제학적인 개념으로 접근한 책은 처음이었다. 저자는 평화를 '공공재'의 개념으로 본다. '무임승차자의 딜레마'이라는 경제학의 유명한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공공재의 경우 외부효과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도 값을 치르려 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평화도 일종의 공공재이기 때문에 있으면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만 평화가 존재할 때의 이익이 평화를 위하여 비용을 지불한 사람에게만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평화를 위하여 비용을 지불하고 싶어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외부효과에 의한 시장실패가 발생할 경우 경제학에서는 피구세와 같은 개념을 도입하여 외부 효과를 내부로 전환한다. 저자는 평화에 대해서도 이러한 접근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즉, 평화를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평화를 유지하며 얻는 이익이 더 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평화와 관련된 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그 사회는 평화를 유지하기가 더 쉬워진다.

특히 이 논의는 한,중,일 3국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중/일 3국은 모두 팽창하는 시장과 자원을 필요로 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는 날로 발전하며 세계 시장을 잠식하고 또 많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나 일본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3국의 경제 구조는 서로의 시장을 점유하면서 싸우고 서로가 가진 자원을 뺏는 방향으로 짜여져 있다. 게다가 3국은 안 좋은 과거사를 공유하고 있으며 북한이라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특히 한/중/일 3국에 있어 평화는 아주 불안한 균형점일 뿐이다. 그래서 더욱 3국의 평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평화 인프라의 예로는 3국의 교육문화 교류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 프로그램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은 일종의 학생교육 교환 프로그램 같은 것으로 이를 통하여 문화나 사회 각 분야의 평화 인프라를 구축하자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문화적 프로그램의 힘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는데 나는 이 효과에 대해서 조금 의문이 든다. 내가 보기에 한중일 3국의 교육은 교육 자체에 평화를 담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태에서 학생을 교환한다고 해서 과연 평화 인프라가 구축될까? 오히려 타국 체류의 경험을 통하여 상대에 대한 무시 혹은 증오만 커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물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저자가 자신의 저서를 통하여 줄기차게 교육의 개혁을 외치고 있긴 하다. 저자가 제시한 다른 대안으로는 경제적인 측면의 평화 인프라로서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의 공동 대처 기금인 '한중일 경제안전기금' 같은 것도 있고 궁극적으로는 유럽처럼 한중일 역내 경제통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나 역시 이러한 경제적인 인프라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선의만 가지고 행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경제적 인센티브만큼 좋은 인센티브는 없는 것 같다. 유럽경제가 통합됨에 따라 유럽 내부에서 항구적인 평화를 유지하려는 힘이 커진 것처럼 한중일 3국도 불안한 균형에서 벗어나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들어갈 수 있길 바란다.

가장 인상적인 구절: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국민경제란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정의를 시도해본 적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궁극적이며 중요한 정의는 '전쟁 없는 경제'였다.

by 날쌘도도새 | 2008/11/29 13:43 | 책읽는 나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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