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전(6/23)

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나의 점수 : ★★★★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이라는 성경이란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책인가 궁금해서 성경을 읽어보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매번 포기했다. 이 책이 마가 복음을 강독하는 형식으로 쓰였기 때문에 이 책에도 성경 구절이 많이 등장하다. 중간마다 나오는 성경 구절을 읽고 있으려니 내가 그동안 왜 성경 읽기를 포기했는지 알겠다. 대체 성경은 누가 번역한 것일까. 도저히 우리나라 말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해 불가능한 번역으로 가득 차 있다. 성경을 읽고 표면적인 뜻이라도 이해하는 것이 대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우리나라에 출판된 번역서 중 최악의 번역을 꼽으라면 자신 있게 성경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그는 성경을 읽고 자기 나름의 해석을 시도했다. 그의 강독을 보면 텍스트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컨텍스트, 특히 당시의 정치, 사회적 맥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그는 예수를 일종의 혁명가로 보았다. 그리고 그는 예수의 혁명 정신을 어떻게 현대에 적용할까를 고민한다. 이천 년 전에 있었던 고리타분한 역사를 얘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역사의 교훈을 지금 이 시대에 비추어보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닌가 싶다.

예수를 혁명가로 보는 그의 해석이 신자들에게는 불온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믿음을 보았다. 나는 이 책이 불온하기는커녕, 신앙 고백으로 느껴졌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김규항이 기독교 신자일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보니 김규항, 그는 정말 믿음이 깊은 사람이다. 그는 예수라는 인물을 정말 존경하며 "믿는 사람"의 마음으로 예수를 이해하려 한다. 그의 편에 서서 예수의 행동을 이해하려 한다. 그가 옳다는 신념, 이것이 믿음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책을 보기 전에는 제목부터가 신성 모독처럼 보이는 예수"전"을 읽고 토론을 하는 기독교 신자들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는데 이제 이해가 된다. 교회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자라면 이 책이 신앙서로 읽힐 수 있으리라.

나같이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책 전체에서 뿜어나오는 믿음의 아우라가 약간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큰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저자가 성경을 비판적으로 읽었듯이 우리가 이 책을 비판적으로 읽는다면 믿음의 고백이 무슨 문제가 될까. 우리는 그저 그의 개인적인 믿음을 존중하며 옆에 살짝 제쳐 두고 그가 "인간 예수"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현실사회 비판과 혁명 정신을 읽으면 되는 것이다. 그는 현 체제(자본주의)를 완전히 뒤엎기를 꿈꾼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근본적인 혁명이지 점진적인 개선이 아니다. 그는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오늘의 바리사이인에 비유하며 아래와 같이 비판한다.

“그들은 언제나 현실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스스로 그런 변화를 위한 노력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 노력은 대개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 현실의 외피를 덜 추악하게 만드는 일에 머문다. 그들은 오히려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를 좇는 모든 노력을 ‘비현실적’이라고 냉소한다. 그들은 ‘NGO’, ‘시민운동’, ‘개혁 운동’, 그리고 ‘실현 가능한 진보’, ‘최소한의 상식의 회복’ 따위 간판과 표어를 걸고 활동한다. 인민들은 탐욕스럽고 불의한 지배세력을 혐오하지만, 양식과 윤리로 무장한 그들을 신뢰하고 존경한다. 그래서 그들, 오늘의 바리사이인들은 사회적으로 강력한 영향력과 설득력을 가지며, ‘진정한 변화를 막기 위한 변화’라는 그들 본연의 임무를 지속하게 된다.”

그가 말하는 혁명- 나눔의 세상, 자발적 가난을 추구하는 세상, 자본주의를 넘어선 세상을 만드는 것- 에 나는 온전히 동의할 수는 없다. 김규항은 이상을 말하고 혁명을 이야기하지만 "어떻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꿈꾸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 역시 그러한 세상을 꿈꾸지만, 도무지 그게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모든 사람이 자발적 가난을 추구하고 서로 나누는 세상이라면 좋겠지.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갖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버릴 수 있게 할 수 있는 거지? 그의 이상에는 공감하지만, 방법론이 빠진 이상은 공허한 주장일 뿐이지 않은가. 부끄러운 일이지만 일단 나부터가 온전한 자발적 가난을 추구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결국 나는 현실과 타협한 채 그가 비판하는 "오늘의 바리사인"으로 남아 있다. 나는 혁명을 꿈꾸지만 그것은 단지 꿈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진정한 변화를 막기 위한 변화'를 추구할 뿐이다.

또 한 가지 저자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이적, 특히 부활에 대한 생각이다. 나는 이적을 일종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단군 신화에서 웅녀가 정말 곰에서 인간이 된 것이 아닌 것처럼 예수의 이야기도 "기적"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일종의 상징인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기적이 진실이냐 아니냐는 논쟁 자체가 부질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기적이 문자 그대로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믿고 여러 가지 "과학적"인 근거를 들면서 기적을 입증하려고 하고 있는데 어떻게 기적의 사실 여부에 대한 논쟁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거지? 왜 이적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고 상징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왜 논쟁을 회피하려고 하는 걸까. 적어도 나는 이적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라고는 얘기할 수는 있는 것 아닌가. 굳이 논쟁 자체가 부질없다는 태도를 취했어야만 할까?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예수와 주변 인물에 대한 역사적 해석 중에 어디까지가 저자의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다른 학자들의 연구 결과인지 구분이 명백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인용과 자기 주장의 구분이 지나치게 불분명하다. 인용 표시를 분명히 하고 참고 문헌을 달아두었다면 더 좋을 뻔했다.

아무튼, 오래 기다려서 읽은 보람이 있는 좋은 책이었다.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추천.

by 날쌘도도새 | 2009/07/30 16:21 | 책읽는 나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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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김철호 at 2009/09/07 02:55
지향이 너가 이런 이글루를 짓고 살고 있었다니!
허쟝스런 느낌이 물씬 풍기는 블로그인걸 ㅎㅎ
왠지 난 왕따가 된 기분이여..ㅋㅋ 암튼 LA서 잘 살고 있지? ^^

난 예수가 혁명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투쟁적인 혁명가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마가복음 위주로 보면 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마태복음의 예수는 더 인자하고,
또 요한복음 보면 정신적으로 굉장히 깊은 면들이 있어.

혹시 관심 있으면 오강남 저, <예수는 없다> 읽어 봐.
예수와 기독교 전반에 대해서 학자적인 안목으로 아주 깔끔하게 쓴 책이야.
현대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 수 있더라.
대학 교수라 그런지 인용, 출처 등도 명확하고, 이야기가 논리정연해서
이공계스러운(?) 사람들이 읽기 좋은 책일 듯 ^^
Commented by 서민정 at 2009/09/12 16:59
허지향~~~ 언니야~~
연락이 안되서 여까지 들어왔딴당 ^^
언니가 멜 보냈어~ 다음메일. 연락죠~ 보고싶다 우리 지향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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