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12/7)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
노라 엘렌 그로스 지음, 박승희 옮김 / 한길사
나의 점수 : ★★★★
 한 편의 잘 쓴 논문을 읽었다. 너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다. 이 책의 기본 주제인 '장애 수용의 사회학'이라는 주제와 그 사례로 든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사회 과학 논문이란 이렇게 쓰는 구나 하고 들여다 보는 재미도 상당했다. 특히 저자의 많은 각주들이 흥미있었다. 연구의 엄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문헌 자료를 확보하고 난 후 그것의 정당성을 검증하는 과정, 구술 자료를 수집하고 난 후 그것이 신빙성 있는 자료인지 철저히 검증하는 과정, 조사 대상자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연구의 윤리성 문제 등등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읽는 내내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한 편의 잘 쓴 논문을 읽는 것으로도 참 배가 불렀다.
 그리고 저자가 소개한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의 사례가 얼마나 흥미로웠는가는 언급할 필요도 없다! 비니어드 섬, 예전에 사우스 마운틴 이야기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 섬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섬에 관심이 생겨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발견한 책이 바로 이 책. 제목부터가 흥미를 끌었다. 수화로 말한다? 그리고 부제로 붙은 '장애 수용의 사회학' 역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저자는 비니어드 섬 사람들의 일화를 통해 장애는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것임을 보인다. 비니어드 섬 사람들에게 청각 장애는 장애가 아니었다. 그 섬 사람들에게 '듣지 못하고 말할 능력도 없다는 것'은 '마치 누군가는 목소리가 낮고 누군가는 목소리가 높은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일단 섬에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유전적 청각 장애인이었다. 같은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섬이라는 좁은 지역에 고립되어 있었고 따라서 유전적 장애가 널리 퍼질 수 있었다. 게다가 청각 장애는 열성 유전이었기 때문에 청각 장애가 특정 집안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예측 불가능하게 나타나는 일이었다. 외부와의 교류가 별로 없었고 주변에서 청각 장애인을 흔히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비니어드 섬 사람들에게 청각 장애는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개인의 특징을 뿐이었다.
 비니어드 섬의 청각 장애인들은 '청각 장애인'이라는 집단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모든 삶을 건청인과 동일하게 누렸으며 모든 활동에 건청인과 마찬가지로 참여했다. 그들이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외되는 일은 없었다. 섬 사람들은 마치 외국어를 배우듯이 어릴 때 부터 수화를 자연스럽게 익혔고 거의 모두가 수화를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수화로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일은 건청인들끼리만 있을 때도 수화를 사용할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2개 국어를 사용하는 지역 사람들처럼 영어로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럽게 수화로 이야기를 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청각 장애인을 기억할 때도 그 사람이 청각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장애인이 아니었다. 너무나 놀라운 사실 아닌가!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어떻게 사회에 더 잘 적응시킬까를 고민한다. 청각 장애인에게 구화를 배워서 사람들의 입술을 읽어서 대화에 참여하라고 말은 한다. (청각 장애인들에게 구화가 더 낫냐 수화가 더 낫냐는 논쟁은 뒤로 하자.) 하지만 비니어드 섬에서는 장애인이 사회에 적응하도록 요구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장애인에게 맞춰졌다. 건청인들도 수화로 이야기를 하듯이 말이다. 따라서 그 섬에서 청각 장애는 더이상 '장애'가 아니었던 것이다.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이 특별히 헌신적이고 이타적이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섬의 사회적 요건상 자연스럽게 청각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앞으로 장애인에 대한 정책을 세울 때 이 일화를 잘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장애를 장애로 규정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수 있을까하는 점을 열심히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

by 날쌘도도새 | 2006/12/08 10:09 | 책읽는 나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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